왜 소에게 옥수수를 먹이는가? 옥수수를 먹은 소는 병이나고 그 소를 먹은 사람도 결국
병에 걸리는데 도대체 왜 ? 이에 대한 답을 구하려면 미국정부의 농업정책을 이해해야만 한다.
이 정책은 심지어 하버'보슈 공법보다 난해하다, 하지만 풀을 먹는 반추동물의 배를
곡물로 가득 채우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렴녀 어렵더라도 살펴보지 않을수없다
하버와 식물유전학 덕분에 1에이커당 25부셸이던 옥수수 수확량은 20세기 들어
140부셸을 웃돌 만큼 눈부신 증가세를 보였다
미국에서만 1년에 옥수수가 100억 부셸이 나오니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먹어 치운다 해도
다 소화할 수없다.
100억 부셸이 나오니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먹어 치운다 해도 다소화활수없다.
100억 부셸의 절반정도는 수출된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의대부분은 소,돼지,닭의 먹이로 사용된다
1부셸의 옥수수를 키우는데 3달러가 들어가지만 이른바 '자유시장'에서 팔리는 옥수수는
2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연방 정부는 그 차액을 보전하고 농민이 파산하지 않을 정도의 이윤을 보조한다.
이패턴은 1차 대전 때부터 시작된것이다. 프랑스가 전쟁터로 변하고 역구농민은 총을 들어야 했으므로
우군을 먹여 살려야 하는 임무는 미국에 떨어졌다
연방정부는"조국을 지키기위해 담장 바로 앞까지 밭을 일구자!"라며 농민을 독려했다
파일은 "연방정부는 사상 최초로 기초 식량 상품에 최적가격을 설정해 생산을 장려했다"라고 설명한다
현금을 많이 쥐게 된 농민들은 전쟁이 끝나자 더많은 땅과 장비를 사들였다.
트랙터가 말을 대체하면서 많은 땅이 농경지로 변했고, 인공적으로 개발된 품종과 화학비료가
최초로 등장하면서 생산은 더욱더 증가했다.
그즈음 전쟁에서 회복한 유럽국가들은 더이상 미국에서 기초식량을 들여가지 않아도 되었다
엄청난 잉여 식량이 생겼기 때문이다
곡물이 점점 더많이 남아돌아 쌓여가니 가격은 떨어지고, 거액의 융자를 짊어진 농민들은
돈이 필요했다.
대공황, 즉 "살문건은 너무 많은데 살돈은 없는"현상은 1929년 주식 대폭락이 있기전에
미국 농업 경제를 먼저 강타했다.
농장이 줄줄이 파산하면서 농민의 숫자도 3250만에서 2050만명으로 줄었다
인구비로 따지면 32퍼센트에서 25퍼센트로 감소한 것이다
대공황이 극에 달했을때는 농가 평균 수입이 52퍼센트 감소했고
농작물의 가격도 바닥을 쳤다.
밀은 부셸당 1.3달러에서 0.38달러로, 옥수수는 0.8달러에서 0.38달러로 떨어졌다
공산품은 시장 사정이 좋지 않으면 생산을 줄일 수 있다.
생산을 줄이면 원자재,인건비, 에너지 등에 들어가는 비용도 줄고, 시장에 나가는 공산품 숫자가
적어지면 결국 가격이 올라간다.
그러나 농민은 그렇게 할 수 없다.
농작물을 키워 시장에 내놓기까지의 기간이 너무 길어 시장에 즉각 반응할수가 없고
다른 재고품처럼 농작물을 처리할수도 없기 때문이다
가격을 낮춘다고 잉여농산물을 팔수도 없다.
이미 가격이 생산비보다 더 낮게 책정되어 있고, 어차피 국제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농민들이 제어할수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농민 수천명이 일제히 특정 농산물을 심지 않아야 시장에 어느 정도나마 영향을 끼칠뿐이다
가격을 떨어뜨린다고 수요가 갑작스레 늘지는 않는다.
사람이 먹는 양에 한도가 있기 때문이다
인건비를 줄일수는 없다.
대부분의 농장은 이미 일손을 한두명으로 줄였다
부부혹은 형제가 일을 하는 형태로 말이다
경작 규모를 줄이면 종자와 비료비용을 조금은 줄일수있지만, 현대 농장 경영 비용의
대부분은 고정 비용으로 땅과 장비구입당시 빌린 대출금의 상환에 들어가는 돈이다
농민은 목에 굴레를 뒤집어쓴 상황을 맞았다.
가격이 낮아지면 고정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생산을 늘려야만 했다
그러나 작황을 늘릴수록 가격은 더낮아졌다. 그게바로 농민이 처한 상황이었다
원래 연방 정부가 농산물 가격을 지원한것은 음식을 싸게 공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농민의 파산을 막기 위해서였다.
농장이 없어지면 음식이 나올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유시장 원리는 기초식량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파일은 모든 사람이 읽어야 할 그의 중요한책 "옥수수는 덜기르고 거리로
더 나서자"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농업경제의 문제는 농업계 전체가 습관적으로 과잉생산을 하는데도 농민 개인이 생산을 줄이면
일정수입을 유지하는것이 불가능한데서 거의 전적으로 기인했다고 할수있다.
문제는 식량이 떨어지는것이 아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생각할수없던 방법이 채택됐다.
농민들에게 생산을 줄이면 돈을 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농장을 은행에 압수당하지 않기 위해 과잉생산을 하던 농가들이 정부 지원금으로
짧은 기간이나마 파산을 면할수있다면 과잉 생산이 줄어들 것이라는 논리에서
나온 정책이었다.
그러나 가격을 지지하기 위해 생산을 제한하는 목표는 1970년대 초에 폐기됐다.
폴런은 "농민을 지원하는 대신, 정부는 농민을 희생해 가면서 옥수수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라고 설명한다
뉴딜정책의 농업 보조금 정책은 농민이 작물을 담보로 융자를 얻을 수있게 하는 방법으로
가격을 지지하려 했다
잉여공급이 생기는 해에 가격이 떨어져 농민이 파산위기에 처하면, 농산물을
공개시장에 가지고 나가 가격을 더 떨어뜨리기 전에 정부에게 팔수있도록 해주는것이
정책의 골자였다.
그러다 가격이 올라가면 농민은 그곡물을 시장에 내다 팔수있다.
가격이 오를때까지 너무 오래걸리면 농민은 융자금을 그냥 갖고 정부에 저당 잡힌 곡물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할수있다.
정부는 홍수나 가뭄으로 곡물 가격이 올라가면 보관하고 있던 곡물의 일부를 팔아 가격을 안정시켰다.
이 정책 덕분에 농민들은 계속 생업에 종사할수있었고, 농업 경제는 죽지 않을수 있었다,
'생활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값싼 농산물이 기아의 원인이였다면? (0) | 2020.04.05 |
---|---|
곡물은 또다른 화석연료이다 (0) | 2020.04.04 |
정치적 채식주의자 (0) | 2020.04.04 |
댓글